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철수/비판 및 논란 (문단 편집) ==== 반론 ==== 위 내용은 사실관계에서 어긋난 부분들이 존재한다. 우선 후보직 사퇴를 평가절하하고 있는데 이런 논리는 당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펼치던 논리로 대다수 야권 지지자들과 다른 해석이었다. 안철수는 후보직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서 문재인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로 지칭했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분명히 밝혔다. 또한 어느정도 기간 칩거했던 건 맞는 사실이지만 이후 46차례 선거유세[* 11월 23일 사퇴 후 12월 6일부터 대선일 까지 유세를 펼쳤다.] 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었다. 당시 안철수는 무소속에다 문재인과 경선을 통해 사퇴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함께 선거유세할 의무가 없었다. 게다가 민주당에 댓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2007년 박근혜는 이명박과 단 1차례의 공동유세도 없었지만 대부분 박근혜 표를 이명박이 흡수한 것에 비추어 보면 안철수 표를 온전히 흡수 못한 건 문재인의 역량 문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대선 당일 미국행을 결정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당시 야권 분위기는 문재인 당선을 당연시 하던 분위기였다. [[박근혜|여자는 대통령이 아니랍니다]]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돌 정도였다. 지분을 따지지 않고 미국 가겠다 알렸을 때 당시 야권 후보나 야권 관계자들은 수고했다 고맙다 였지 왜 대선 망치냐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문재인이 지자 그런 여론이 생겼다. [[문재인]]이 2013년에 쓴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는 ‘선거 당일에 출국하는 것도 [[안철수|안 후보]]가 사전에 저에게 연락해줬고, 필요할 경우의 연락채널도 알려 줬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즉, [[문재인]]은 안철수의 출국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에 말을 바꾼 것이다. 대선 때 안철수가 문재인을 돕지 않았다는 주장과 다르게 40회 이상 공동유세를 하였다. [[https://news.joins.com/article/21438807| [팩트체크]지난 대선에서 안철수는 문재인을 돕지 않았다?]] 안철수는 나중에 자신이 사퇴를 결심케한 이유로 50대 남성의 자살[* 후보 단일화를 요청하는 유서와 플래카드를 남겨놓고 자살한 사건.]과 문재인 후보의 3자대결 불사를 들었다. 실제로 '''문재인 후보는 23일 협상 결렬 후 단일화 없이 3자대결을 하겠다고 밝혔다.'''[* 신해철은 거대정당을 개인이 압박하였다. 표현했고 이 기적은 후에 폄훼될 것이라고 트위터에 밝혔다.] 특히 위의 그런 식의 사퇴는 박근혜가 당선될 확률을 높이는 행위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문장은 전형적인 아전인수식 해석으로서 결과론적인 변명일뿐이다. 그때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은 현재와 별 다를 바 없이 컸고,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3자대결을 불사하겠다는 자]]에게 경쟁자의 양보는 그 자체로서 엄청난 정치적 이득이었음을 부정하는 발언인 것이다. 당시 [[문재인]]의 당선을 위해 안철수뿐만 아니라 여러 야권후보들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하였으나[* [[이정희]],[[심상정]] ] [[박근혜]]가 당선되었다. [[통합진보당]]은 경선을 통해 [[이정희]] 전 당 대표를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으나, 이정희 후보는 12월 17일 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정의당]]은 10월 20~21일 당원 찬반 투표를 실시해 [[심상정]] 의원을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으나, 심상정 후보는 11월 26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며 선거 포기를 선언했다. 진보정의당은 민주통합당에서 주도한 국민연대 결성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